고려 무쌍 김경손 장군
고려시대에는 수많은 전쟁과 그 전쟁속 많은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힘을 쏟았던 유금필 장군, 소드마스터로 유명한 척준경 장군 등이 그들인데요.
이런 영웅 중 오늘 소개할 인물은 귀주성 전투에서 12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세계 최강 몽골군에 돌격하여 공격을 퍼붓고 돌아온 고려 무쌍 김경손 장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경손 장군
혼자 힘으로 전쟁의 판도를 바꾼 척준경과 비견될 수 있는 인물이 김경손 장군입니다.
고려 시대 또 다른 무쌍인 김경손은 몽고 1차 침입당시 정주성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12인의 특공대와 함께 성 밖으로 나가 몽골군과 싸운 후 돌아왔더니 성안에 사람들이 모두 도망가 몽골 본대가 들이닥쳐 어쩔 수 없이 도망을 쳤습니다.
12인의 무사들은 계속 김경손을 따릅니다.
김경손과 12인의 무사들은 몽골군에 들키지 않기 위해 불을 피우지 않고 날고기를 먹어가며 몽골군 진영을 돌파해 고려군의 거점인 귀주성으로 갑니다.
몽골 장군 살리타가 이끄는 몽골 대군은 의주와 철주를 점령하고 귀주성을 공격합니다.
몽골군이 기마민족이라는 이유로 기마병 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고정관념입니다.
중국과 서방의 대도시들을 모조리 격파하는 과정에서 전세계의 공성 무기들과 공성 기술자들을 꾸준히 발전시킨 그들입니다.
고려를 공격할 시점의 몽골군은 서계 최강의 공성전 무기와 실력을 갖춘 부대였습니다.
당시 귀주성 방어를 담당하던 귀주 병마사는 박서 장군이었습니다.
그는 5천의 병력으로 귀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몽골군을 맞아 박서 장군은 그나마 정예병이라 할 수 있는 별초군 250명을 각 성문에 나눠 배치했으나 이들조차 떨고 있었습니다.
말을 달려와 성벽을 기어오르고 포차를 쏘고 성을 함락한 다음에 사람들의 머리로 탑을 쌓는다는 세계 최강의 부대를 고립된 성의 5천여 병사가 어떻게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사기는 바닥을 쳤습니다.
병마사 박서가 아무리 눈을 부라리고 김경손 장군이 호령을 해도 한번 꺽인 사기는 회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때 김경손 장군이 활약을 합니다.
김경손과 12인의 결사대
남문 수비를 맡은 김경손 장군은 결사대를 조직해 말을 타고 성문 밖으로 나가 몽골군을 기습할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을 듣고 별초군들은 좌절하고 맙니다.
김경손이 칼을 빼서 비겁한 놈들은 목을 치겠다고 성문을 열고 병사들을 내몰았지만, 성밖으로 나가자마자 겁에 질린 군사들은 창을 놓고 수백명이 동시에 엎드려 버렸습니다.
엎드리지 않은 사람은 김경손 장군과 12명의 부하들 뿐이었습니다.
이에 김경손은 부하들에게 "나하고 너희들만 간다." 말했습니다.
남문 밖 저편 들판에는 수백의 몽골군 선봉대가 있었습니다.
"저희 12명으로 말입니까?" 부하들이 묻자
"홰 12명이냐 나까지 13명이지" 라 말하고 투구 끈을 조이고 말에 뛰어올랐습니다.
그의 12명 부하들도 말에 올라탔습니다.
"가자" 외치며 13인의 미니 기병대는 몽골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김경손과 12인의 별초들은 몽골군 대열 속으로 들어가 화살로 기수병과 지휘관들을 저격하며 기선을 제압했습니다.
몽골군은 기습에도 강한 부대였지만, 이렇게 적은 숫자로 기습해 올것을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이미 정주성에서 이미 목숨을 버린셈 쳤던 결사대였습니다.
화살은 정확했고, 칼질은 매서웠습니다.
수십명이 시체로 변하자 몽골군은 당황했습니다.
아무리 강한 부대라도 당황하면 병아리떼보다 못했습니다.
몽골 부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뒤 13인의 결사대는 유유히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나 빨리 움직였는지 몽골군 전체가 아무 대응도 하지 못했습니다.
김경손과 12인의 결사대는 모두 경미한 부상만 입은 채 멀쩡히 귀환했습니다.
성루에 올라 이를 지켜보던 박서 장군은 성문으로 달려가 김경손을 맞이하며 눈믈을 쏟으며 큰절했고, 김경손도 엎으려 울었습니다.
박서와 김경손 두 무장은 서로에게 절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이를 본 고려군의 사기는 고무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귀주성 공방전에서 고려군과 백성들은 끝내 귀주성을 지켜냈고, 그 중심에는 박서 장군과 김경손 장군이 있었습니다.
몽골군이 쏘아대는 포차의 돌에 바로 옆 병사 머리가 날아가버렸을때 피하시라고 애타게 부르짖는 병사들에게
"내가 움직이면 너희들의 마음도 움직일 것이다"
라고 의연하게 버티는 장군 앞에서 어느 병사가 비겁할 수 있으며, 어떤 백성이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귀주성은 끝끝내 몽골군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그것도 세계 최강의 몽골 대군을 5천여 병력으로 말입니다.
김경손의 돌격으로 고무된 고려군과, 박서 장군의 전략. 그것을 충실히 이행한 군과 민이 있어 얻은 결과였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한 몽골군은 부대를 나눠 개경으로 진격했습니다.
이에 무능한 고려 정부는 강화를 맺었는데, 그 조건에 귀주성 항복이 있었습니다.
강화를 맺는 그 시점가지도 귀주성은 버티고 있었고, 급기야 강화의 저해 요소가 됐던 것입니다.
조정에서는 사자를 파견해 몽골군에 항복하라 했지만, 박서와 김경손은 완고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눈물을 머금고 귀주성의 성문을 열고 항복하게 됩니다.
귀주성 전투는 몽골 제국 군대를 맞아 싸워 이긴 세계사적으로도 몇 안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김경손 장군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전투 이후 그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영웅의 비참한 최후
전주에서 백제 부흥을 외치는 반란이 일어났을때 김경손 장군이 출격하자 반란군 수장 이연년은 그 이름을 높이사 부하들에게 명을 내렸습니다.
"절대 활을 쏘지 말라. 생포해 내가 부릴것이다."
라고 명령을 내린 것 입니다.
이연년은 김경손을 설득해 보려다가 그만 싱겁게 사로잡혀 처형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김경손은 반란군에게 까지 명성을 떨쳤던 것입니다.
최이가 죽고 그 서자인 최항이 고려 최고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최항은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김약선의 동생이자 전쟁 영웅인 김경손 장군이 늘 눈에 거슬렸습니다.
고려의 영웅이자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그에게 시기와 질투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최항은 김경손을 백령도로 유배를 보내버립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낼 최항이 아니었습니다.
2년쯤 뒤에 최항은 백령도로 사람을 보내 김경손의 사지를 꽁꽁 묶은 뒤 배에 싣고 나가서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세계 최강의 군대를 상대로도 겁없이 돌격을 했던 용맹한 장수의 최후가 수장이라니...
그 자신도 생각지 못했을 것입니다.
귀주성 전투의 영웅이자 고려의 영웅은 그렇게 허망한 최후를 맞이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왜 항상 영웅들의 최후는 비참한 경우가 많을까요?
이상이 고려의 무쌍 중 한명인 김경손 장군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위 포스팅은 유튜브 [역사적그날] 채널에서 영상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역사적 사건 및 역사적 인물로 인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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