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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현상금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들에게 일제가 고액의 현상금을 걸고 체포하려고 한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할 독립운동가들.
하지만 당시 일제는 이분들을 잡고 싶어 안달이 났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제는 독립운동가를 잡기 위해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오늘은 이중 가장 높은 현상금이 걸렸던 두분의 독립운동가를 알아보겠습니다.

 

 

 

 

2위 김구 선생님

현상금 60 만원 (현재 가치 약 200억원)

 

김구 선생을 모르는 분들은 없을 텐데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셨던 독립운동가 김구선생님.
수많은 무장 투쟁을 주도했던 김구 선생은 일제가 현상금 60만원을 걸고 잡으려 한 인물입니다.
당시 60만원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00억원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이 금액만 봐도 김구 선생이 얼마나 일본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김구 선생님을 잡고 싶었을지도 말입니다.
이러한 현상금이 걸렸던 김구 선생은 일제의 끈질긴 추격에도 끝까지 버티며 독립운동을 계속 하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셨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1위 약산 김원봉

현상금 100만원 (현재 가치 약 320억원)

 

약산 김원봉
그는 의열단을 조직하고 이끌었던 독립운동가 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구 선생을 제치고 현상금이 1위였던 사람은 김원봉입니다.
여담이지만 이 금액은 오사마 빈라덴에게 걸렸던 540억 현상금 이전까지 전세계 역사상 최고 금액이라고 합니다.
약산 김원봉은 의열단을 조직하여 국내의 일제 수탈 기관 파괴, 요인암살 등 무정부주의적 투쟁을 하였습니다.
그는 일제에 붙잡히지 않기 위해 같은 곳에 2시간 이상 머무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박재혁, 최수봉, 김익상, 이종암, 오성륜, 김상옥, 김지섭, 김병현, 김광추, 박희광, 나석주 같은 독립운동가 분들이 다 의열단의 단원들이었습니다.
약산 김원봉은 우리에게 김구 선생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데요.
그는 의열단 활동이후 조선 의용대를 편성해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습니다.
이후 임시정부에 합류해 한국 광복군 부사령관,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을 지냈고, 광복 후 귀국한 김원봉은 좌익과 우익이 대립할 때 좌익 계열에 참여했습니다.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하여 북한의 고위 관리인 노동상에 오르는 등 정치 활동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1958년 11월 김일성 비판을 제기한 옌안파 제거작업 때 숙청되고 맙니다.
일제가 가장 큰 현상금을 걸면서 까지 잡으려고 했던 약산 김원봉.
그는 독립운동가들 중 큰 발자취를 남겼지만,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 인물입니다.
남한에서는 월북한 인사이기 때문에 평가절하되었으며, 북한에서는 김일성에 의해 숙청된 인물이다보니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비운의 독립운동가였습니다.
남과 북, 우파와 좌파를 떠나서 약산 김원봉의 독립운동은 제대로 평가가 되어야 할것입니다.

 

 

일제의 큰 현상금이 걸려 늘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던 김구 선생님과 약산 김원봉.
그들의 조국 독립을 위한 숭고한 희생과 노력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독립운동가 현상금 관련 포스팅은 여기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또 다른 역사 포스팅으로 인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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